자식을 낳아 기르는 부모의 수고를 정작 자녀들은 잘 알지 못합니다.

철부지 어린 시절에는 자신을 위해 부모가 얼마나 수고하고 희생사는지 깨닫지 못하고, 성장해도 자기 혼자 자라난 듯 부모의 은공을 잊기 일쑤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를 영원한 생명으로 낳으시고 천국으로 인도하시기까지 하늘 아버지, 어머니께서 베풀어 주신 사랑의 넓이와 깊이가 어떠한지 우리 자녀들로서는 가히 측량하기 어려운 것 같습니다.

'죄와 삯은 사망'(롬6:23)이라 하신 말씀처럼, 하늘에서 범죄하고 이 땅에 쫓겨 올 때 우리는 죽을 수 밖에 없는 존재들이었습니다. 아무도 죄인들의 영혼에 관심을 갖지 않고 바라만 보던 상황에서 오직 하나님만이 우리 안위를 염려하시고 우리를 살리시려 이 땅까지 오셨습니다.

요6:54  ... 내(예수님) 살을 먹고 내(예수님)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

마26:17~19  무교절의 첫날 ... 제자들이 예수의 시키신 대로 유월절을 예비하였더라 ...

마26:26~28  저희가 먹을 때에 예수께서 떡을 가지사 축복하시고 떼어 제자들을 주시며 가라사대 받아 먹으라 이것이 내 몸이니라 하시고 또 잔을 가지사 사례하시고 저희에게 주시며 가라사대 너희가 다 이것을 마시라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

육신의 짧은 생명을 살려주어도 그 생명의 은인에 대해 감격해하고 평생 그 은혜를 잊지 않는것이 인간의 도리라면 영원히 죽을 우리를 영원히 살려주신 그 생명의 은인을 우리가 과연 배반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우리 생명의 은인이십니다. 그것도 잠시 잠깐의 생명이 아니라 영원한 생명의 은인이십니다. 영원한 지옥 불에서 죽을 수 밖에 없는 자녀들을 살리시겠다는 일념으로 이 죄악 세상까지 오셨고, 친히 살을 찢고 피를 흘려 우리를 살려주셨습니다.

세월은 사람을 기다리지 않고 하나님께서 예정하신 영원의 시간 속으로 빠르게 달려가고 있습니다.

지나온 세월을 돌이켜보며 우리는 우리를 구원해주신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에 감사드리고 영광 돌리는 일을 잊지 말아야겠습니다.

우리의 구원을 위해 육쳔년을 기다리시고 마지막 이 시대 아버지, 어머니께서는 우리를 찾아 친히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런 사랑이 저희를 다시 하늘 본향으로 이끌어 주시고 생명의 길로 인도하여 주셨습니다.

이 시대에 오직 우리를 위해 이 땅가운데 생명의 길 유월절을 알려주신분이 바로 안상홍님이십니다.

예언따라 이 땅가운데 우리를 구원주신 하늘아버지 안상홍님, 하늘어머니

이것이 바로 우리가 아버지, 어머니를 믿는 이유입니다.

 

전쟁, 극심한 가뭄과 기아, 천재지변으로 인해 고국을 등지고 떠나야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난민들입니다.

 

 

 
현재 유엔난민기구(UNHCR)의 보호를 받고 있는 사람만해도 2,100만 명에 달하며,

본국을 떠나지는 못했지만 자기가 태어난 나리에서 유엔난민기구에 보호를 요청한 사람들도 무수히 많습니다.

전세계 인구의 약 1%인 7,700만명 가량이 난민 상태에 놓여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난민의 삶은 궁핍을 넘어 참혹합니다.

나라가 없는 것은 물론이고, 집도 가족도 없는 사람들이 적지 않습니다.

식량과 마실물은 늘 모지라고, 적절한 교육과 서비스를 제공받는 것은 꿈도 꾸지 못한다.

 

난민 수용소는 비바람을 겨우 피할정도의 천막들로 이루어져 있으며, 그속에서 난민들은 일주일에 한두번씩 배급되는 최소한의 식량으로 근근이 살아가고 있습니다.

 

최근의 통계를 보면 전쟁을 통해 난민이 발생하고 있는 나라는 아프카니스탄, 수단, 소말리아, 콩고 등이며 미국과의 전쟁에서 전 국토가 초토화된 이라크에서는 약 220만명의 난민이 발샐하였습니다.

이들은 이웃한 터키, 시리아, 요르단, 레바논, 이집트 등지로 흩어져 살아가고 있습니다.

전 국민의 10% 이상이 고국을 떠났으며, 그 비극적인 이주의 흐름은 이후로도 지속되고 있습니다.

 

고향을 잃어버리고 난민으로 살아간다는 것, 난민의 삶은 고단함과 어려움으로 알룩진 삶이라 할 수 있습니다.

고향에서는 마음껏 웃을 수 있었고 비록 넉넉지는 않아도 사랑하는 가족이 있었고 나누고 함께 할 친구가 있었지만

그 모든것을 잃어버리고 고향을 떠나 낯설은 타향에서 설움을 삭이는 삶이 바로 난민들의 삶입니다.

 

이러한 고단한 난민의 삶이 바로 우리 영혼들의 삶입니다.

하늘본향을 잃어버리고 이 땅에 나그네되어 살아가는 고단한 인생길이 바로 우리의 삶인 것입니다.

               

히11:13~16  이 사람들은 다 믿음을 따라 죽었으며 약속을 받지 못하였으되 그것들은 멀리서 보고 환영하며 또 땅에서는 외국인과 나그네로라 증거하였으니 이같이 말하는 자들은 본향차는 것을 나타냄이라 저희가 나온바 본향을 생각하였더면 돌아갈 기회가 있었으려니와 저희가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것이라

 

언제쯤 고향으로 돌아갈까 희망조차도 가질 수 없는 것이 이 땅 난민들의 현실이지만, 우리에게는 머지않아 돌아갈 하늘 본향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롬8:15~18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였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아바 아버지라 부르짖느니라 성령이 친히 우리 영으로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거하시나니 자녀이면 또한 후사 곧 하나님의 후사요 그리스도와 함께한 후사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될 것이니라 생각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 
 

막연한 삶 속에 희망을 잃어버린 이 땅의 난민들과 확연히 다른 이유, 그리고 이 땅의 잠시 잠깐의 어려움을 이겨낼 수있는 이유는 우리에게는 돌아갈 본향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곳에는 우리의 형제와 자매, 우리를 기다리시는 그리운 하늘 아버지, 하늘 어머니가 계시기 때문입니다.


고후6:17~18  그러므로 주께서 말씀하시기를 ··· 내가 너희를 영접하여 너희에게 아버지가 되고 너희는 내게 자녀가 되리라 

히12:9  또 우리 육체의 아버지가 우리를 징계하여도 공경하였거든 하물며 모든 영의 아버지께 더욱 복종하여 살려 하지 않겠느냐 

갈4:26  오직 위에 있는 예루살렘은 자유자니 곧 우리 어머니라

                         

그날을 간절히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에게 가장 큰 소원이 무엇이냐 묻는다면 한결같이 그날이라고 말합니다.

그들은 가족이 그리워도 볼 수 없고 고향이 그리워도 갈 수 없습니다.

그들의 자유는 오직 '대제사장의 죽음'뿐입니다.

 

대제사장의 죽음과 사형수의 죽음??

미스터리한 법의 진실은 무엇일까요??

도피성의 법은 단순히 지나간 역사가 아닙니다. 영혼세계를 그림자로 보여주신 것이죠.

인류의 고향은 하늘나라입니다.
하늘나라를 잃어버린 영적 실향민 촌에서 영적 실향민이 되어 살아가는 우리들을 이 지구 도피성인 감옥에서 해방시켜 주시기 위하여 2000년전 예수그리스도께서 오셨습니다.

 

사형수인 이 죄인들을 해방시켜 주시기 위해서 예수그리스도께서 대제사장되어 오셔서 십자가에서 피흘리심으로 희생 당하신 것입니다. 십자가에서 피흘리신 보혈의 피를 새언약유월절 안에 담아두셨습니다.

그리고 다시 육체의 모습으로 두번째 오셔서 천국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인 새언약유월절을 알려주셨습니다.

 

하나님의교회만이 죄사함 받아 천국갈 수 있는 새언약유월절을 지키는 교회입니다.

자신의 근본이 죄인임을 깨달으신 분이라면 반드시 하나님의교회로 오셔서 새언약유월절로 죄사함받아 하늘 본향으로 돌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사41:10~13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니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 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보라 네게 노하던 자들이 수치와 욕을 당할 것이요 너와 다투는 자들이 아무 것도 아닌 것 같이 될 것이며 멸망할 것이라 네가 찾아도 너와 싸우던 자들을 만나지 못할 것이요 너를 치는 자들은 아무 것도 아닌 것 같이, 허무한 것 같이 되리니 이는 나 여호와 너의 하나님이 네 오른손을 붙들고 네게 이르기를 두려워 말라 내가 너를 도우리라 할 것임이니라
 
하나님의교회는 재앙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세상을 창조하실 수도, 멸망시킬 수도 있는 하나님께서 도와주시겠다고 약속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하나님께서 우리를 보호하신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왜 도와주실까요?

사43:1~5  야곱아 너를 창조하신 여호와께서 이제 말씀하시느니라 이스라엘아 너를 조성하신 자가 이제 말씀하시느니라 너는 두려워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네가 물 가운데로 지날 때에 내가 함께할 것이라 강을 건널 때에 물이 너를 침몰치 못할 것이며 네가 불 가운데로 행할 때에 타지도 아니할 것이요 불꽃이 너를 사르지도 못하리니 대저 나는 여호와 네 하나님이요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요 네 구원자임이라 내가 애굽을 너의 속량물로, 구스와 스바를 너의 대신으로 주었노라 내가 너를 보배롭고 존귀하게 여기고 너를 사랑하였은즉 내가 사람들을 주어 너를 바꾸며 백성들로 네 생명을 대신하리니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하여 네 자손을 동방에서부터 오게하며 서방에서부터 너를 모을 것이며


하나님의 자녀이기에 '너는 내것이라'하셨습니다.

부모가 자식을 자신보다 먼저 생각하고 보호하시는 것처럼,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하나님의 보배로 생각하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교회는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는 곳인 도피처입니다.

왜 내것이라 하셨을까요?

새언약유월절 떡과 포도주 = 하나님의 살과 피
그러니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의 살과 피를 물려받은 자들을 말씀하시는 것이고

하나님의 살과 피를 물려받은 자들은 하나님의 자녀이기에 하나님께서 보호하시고 지켜주십니다.
 
시91:6~10  흑암 중에 행하는 염병과 백주에 황폐케 하는 파멸을 두려워 아니하리로다 천인이 네 곁에서, 만인이 네 우편에서 엎드러지나 이 재앙이 네게 가까이 못하리로다 오직 너는 목도하리니 악인의 보응이 네게 보이리로다 네가 말하기를 여호와는 나의 피난처시라 하고 지존자로 거처를 삼았으므로 화가 네게 미치지 못하며 재앙이 네 장막에 가까이 오지 못하리니

우리를 보고 재앙이 안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인을 보고 재앙이 안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보호하시고 도와주시는 것을 한 두번으로 끝내는 것이 아니라 영원히 도와 주시고 지켜주십니다.

옛적 초림당시 유대인들은 오로지 여호와하나님만이 하나님이라고 믿고 살아오고 있던 민족들이다.

사43:11  나 곧 나는 여호와라 나 외에 구원자가 없느니라

그 민족들에게 새로운 이름으로 오신 예수님께서 등장하셔서 당신께서 아버지의 일을 하시는 그리스도임을 드러내자 십자가에 못박는 일을 서슴지 않았다.

요10:30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 하신대

이시대도 마찬가지인 것이다.

또한 예수님께서 육신을 쓰고 계실 때에는 이스라엘백성들에게만 복음을 전파하라고 하셨다.

마15:24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나는 이스라엘 집의 잃어 버린 양 외에는 다른데로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노라 하신대

물론 제자들도 그 말씀에 순종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말씀을 전파하였던 것이다.

마10:5-7  예수께서 이 열 둘을 내어보내시며 명하여 가라사대 이방인의 길로도 가지 말고 사마리아인의 고을에도 들어가지 말고 차라리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에게로 가라 가면서 전파하여 말하되 천국이 가까왔다 하고

그런데 예수님께서 돌아가시고 난 이후에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으라고 말씀하셨다는 것이다.

마28:19-20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찌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만일 때에 주시는 말씀을 이해하지 못하고 그전에 했던 말씀만을 가지고 분별할려고 한다면 구약의 구원자는 여호와 하나님 외에는 없다고 주장해야 하며 그 주장으로 끝내는 예수님을 영접하지 못하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며 예수님을 영접했다고 할지라도 십자가의 피를 흘리시기 전에 이방인에 대해서 주신 말씀과 십자가의 보혈로 말미암아 이방인과의 담이 허물어 졌고 그러므로 온 세상 열방에 전하라 하신 말씀이 상호간에 모순으로 부딪치고 만다는 것이다.

분명 예수님께서는 이스라엘에만 복음을 전파하라고 하셨는데 뒤에 가서는 온 세상에 전파하라고 하셨으니 만일 이스라엘에만 복음 전파하라는 말씀만 들은 사람이 있다면 결국에 가서는 온 세상에 전파하라는 말씀에 불복종하고 끝내는 다시금 그리스도의 말씀에 불순종하는 결과를 가져 올 것이다.

그러므로 때에 따라 주시는 말씀대로 순종해야 충성된 종이라고 하였으니 시대를 분별하여 성령과신부로 오신 아버지 어머니 말씀에 순종해야 할 것이다.

 

약2:14  내 형제들아 만일 사람이 믿음이 있노라 하고 행함이 없으면 무슨 이익이 있으리요 그  믿음이 능히 자기를 구원하겠느냐

약2:26  영혼없는 몸이 죽은것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

이 땅에서 아무리 의인이라고 할지라도 영적으로 보면 하늘에서 죽을 죄를 짓고 쫓겨 내려온 죄인들일 뿐이다(눅15:4-7, 마9:13, 롬6:23) 따라서 우리의 구원에 있어 가장 필요한 것은 그리스도의 보혈을 힘입어 죄사함을 얻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의 보혈을 힙입는 방법이 무엇일까?  그것이 바로 침례요, 유월절 새언약이다(행2:28, 롬6:3-4, 벧전3:21, 마26:28)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믿고 침례를 받아야 구원받는다고 하셨고, 당신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시지 않는 자는 생명이 없다고 하셨다.

막16:16  믿고 세례를 받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요 믿지 않는 사람은 정죄를 받으리라

요6:53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

따라서 침례를 행하지 않거나 예수님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시는 유월절을 지키지 않는 자는 그리스도의 보혈의 공로를 힘입을 수 없으므로 죄사함과 영생을 얻을 수 없다.

이 모든 말씀을 믿고 침례도 받고 유월절도 지키는 것이 참된 믿음이요 그리스도의 보혈을 힘입어 구원에 이룰 수 있는 믿음이다.

또한 구원받을 수 있는 믿음은 단순히 하나님을 믿는다는 생각 자체가 아니다. 예를 들어 귀신들도 하나님을 믿는다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구원받을 수 있겠는가?

약2:19  네가 하나님은 한 분이신 줄을 믿느냐 잘하는도다 귀신들도 믿고 떠느니라

그렇기 때문에 구원받기 위해서는 믿기만 해서는 안되고 하나님의 뜻대로 행해야 함을 깨달아야 하겠다.

 

초림 당시 예수님을 믿고 따르던 수많은 제자가 있었지만 대부분이 예수님을 선지자 중의 한 사람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하지만 베드로는 달랐습니다. 그는 예수님을 사람의 모습으로 오신 하나님으로 믿고 따랐던 것입니다.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사람의 모습으로 오신다는 것을 받아들이고 믿는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하지만 베드로는 사람의 모습으로 자신의 눈앞에 계시는 예순밍르 그리스도로 믿었습니다. 그리고 입으로 시인하였습니다. 그 결과, 엄청난 축복이 담겨 있는 천국 열쇠를 받았던 것입니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천국 열쇠를 받은 베드로를 닮고 싶어 합니다. 그의 믿음을 닮게 되면 자신들도 베드로와 같이 천국 열쇠를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베드로는 예수님께서 사람으로 오신 구원자 곧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입으로만 시인한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믿었기 때문에 천국 열쇠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히9:28  이와 같이 그리스도도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시력 단번에 드리신 바 되셨고 구원에 이르게 하기 위하여 죄와 상관없이 자기를 바라는 자들에게 두번째 나타나시리라

마지막 시대 예수님께서 2천년 전과 동일한 사람의 모습으로 두 번째 오셨습니다. 무화과나무의 예언과 멜기세덱의 예언, 다윗의 예언 등 성경의 모든 예언을 따라 이 시대 구원자가 오신 것입니다. 그 분이 바로 안상홍님이십니다.

입으로만 사람으로 오신 구원자를 믿었던 자들을 결코 안상홍님을 재림 그리스도로 믿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베드로와 같이 마음으로 믿었던 자들은 안상홍님을 이 시대 재림그리스도로 믿고 따를 수 있습니다.

천국 열쇠의 주인공이 되고 싶은가요? 그렇다면 베드로와 같이 사람의 모습으로 오셨지만 성경이 증거하고 있는 구원자를 믿어야 하겠습니다.

세례나 침례는 성경을 믿고 하나님을 믿는 신앙인에게 있어 신성한 예식이다. 신앙의 최종 목적인 구원으로 향하는 첫걸음이기도 하다. 하지만 두 예식은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세례는 죄를 물속에 씻는다는 의미고, 침례는 죄를 물속에 장례 지낸다는 의미를 지닌다. 비기독교인들이야 두 예식의 차이를 별반 느끼지 못하겠지만 실상은 엄청난 차이가 있다. 이 예식들의 차이점을 교리비교를 통해 살펴보자.

 

 

세례

1. 근거

세례(洗禮)의 한자는 씻을 세(洗), 예식 례(禮)다. 성경에서는 죄를 적은 양의 물로 씻어서 사했다는 세례식의 기록은 없다. 단지 역사적으로 살펴본다면 세례 의식은 초기 기독교가 예루살렘을 시작해 소아시아, 유럽, 아프리카 등지로 전파되면서 생겨났다. 당시 무역이나 여행에서는 불가피하게 사막을 지나야 했고 물이 귀한 사막에서 복음을 들은 후 새 삶을 찾고자 예식을 행해야 하는 경우, 많은 양의 물을 사용할 수 없어 물을 조금 뿌려 약식으로 행하는 세례식을 베풀었다. 불가피한 상황에서 행해졌던 이 예식은 A.D. 120년경 많은 교회로 전파됐다.


2. 교단

세례식은 로마 카톨릭교회와 동방 정교회, 루터교, 성공회, 감리교, 장로교 등 대부분의 기독교 종파에서 행해지고 있다.


3. 결론

세례식은 성경에 기인하고 있지 않다. 예식 자체가 사람들의 편의에 의해 생겨난 것이다. 의미 정도만 성경에 두고 행위로는 하나님의 말씀에 따르지 않고 있는 셈인 것이다. 세례식으로 죄 사함을 받고자 하는 것은 성경에 없는 방법으로 죄 사함을 구하는 것이므로 진정한 죄 사함, 즉 구원과는 거리가 멀다. 국내 한 포털사이트에는 세례에 대해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성서의 세례는 물에 몸을 담그는 방식이었다. 즉 요한이 요르단 강에서 하던 대로 강이나 호수의 물속에 완전히 몸을 담가야 했다.” (네이버 지식백과)

침례

1. 근거

예수님은 근본 하나님으로 죄가 없으신 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께서는 요한에게 침례를 행하게 하셨다.


이때에 예수께서 갈릴리로서 요단강에 이르러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려 하신대 요한이 말려 가로되 내가 당신에게 세례를 받아야 할 터인데 당신이 내게로 오시나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이제 허락하라 우리가 이와 같이 하여 모든 의를 이루는 것이 합당하니라 하신대 이에 요한이 허락하는지라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곧 물에서 올라오실새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성령이 비둘기 같이 내려 자기 위에 임하심을 보시더니 하늘로서 소리가 있어 말씀하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시니라 (마태복음 3:13~17)


이 말씀을 통해 예수님께서 요한에게 받은 침례의 형태를 볼 수 있다. 침례(浸禮)의 한자는 잠길 침(浸), 예식 례(禮)다. 예수님께서는 침례를 받으시고 물에서 올라오셨다. 몸이 완전히 물에 잠겼다는 의미다. 간단하게 세례식을 행했다면 굳이 물에 내려가서 온몸을 적시지 않아도 된다. 그런데도 요단강 속으로 함께 내려가 침례식을 행하신 예수님은 당신의 직접적인 행위를 통해 죄 사함의 의식이 어떻게 이뤄지는지 보여주셨다.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같이 너희도 행하게 하려 하여 본을 보였노라 (요한복음 13:15)


2. 교단

오늘날 침례를 행하는 교단에는 하나님의교회 세계복음선교협회가 있으며 그 외에도 침례교와 예수그리스도후기성도교회(몰몬교), 여호와의증인 등이 있다.


3. 결론

성경은 수많은 곳에서 구원의 표인 ‘침례’를 거론하고 있다. 침례는 온몸을 물에 적시거나 담그는 예식으로 반드시 ‘침수’가 원칙이다. 빌립이 에디오피아 여왕 간다게의 현 재무부 장관급인 내시에게 베풀었던 예식도 세례가 아닌 침례였다.


빌립이 입을 열어 이 글에서 시작하여 예수를 가르쳐 복음을 전하니 길 가다가 물 있는 곳에 이르러 내시가 말하되 보라 물이 있으니 내가 세례를 받음에 무슨 거리낌이 있느뇨 이에 명하여 병거를 머물고 빌립과 내시가 둘 다 물에 내려가 빌립이 세례를 주고 둘이 물에서 올라갈새 … (사도행전 8:35~39)


이 두 사람의 행위 속에서 침례라는 예식의 시급함을 짐작할 수 있지만, 고관대작으로서 조금 더 좋은 자리를 마련하고 깨끗한 물 한 병으로 얼마든지 예식이 가능했을 것이다. 만약 세례가 올바른 예식이었다면 말이다. 그러나 ‘침수’를 원칙으로 하는 침례식은 물 한 병으로 해결하기 힘들다. 비록 하천에 흐르는 물이라도 온몸을 적셔야 하는 침례식을 치르기 위해서는 자신의 깨끗한 옷 정도는 버리려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던 내시의 결단을 보면서 천국을 향한 그의 믿음과 당시 행해졌던 죄 사함의 의식이 바로 침례였음을 알 수 있다.


아울러 침례는 깨닫는 즉시 행해야 한다. 6개월이나 1년간의 학습 후 침례를 행하라는 말씀은 성경 어디에도 없다. 침례를 즉시 행해야 하는 이유는 우리 인생이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너는 내일 일을 자랑하지 말라 하루 동안에 무슨 일이 날는지 네가 알 수 없음이니라 (잠언 27:1)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마태복음 28:19~20)


사람은 하루 동안에도, 한 시간 후 또는 일 분 후에도 무슨 일을 당할지 알 수 없는 존재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먼저 침례를 베푼 후에 말씀을 가르치고 지키게 하라”고 당부하셨던 것이다.

출처 : 패스티브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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